길을 떠나며

김해화

 
얼마나 많은 뿌리
얼마나 많은 가지
뽑아내고 짜르고 뿐질렀느냐 묻지마라
상처에 대하여 견딤에 대하여
그 꽃 잎사귀
쓰라림을 적시는 빗줄기 이슬
목숨깊이 새긴 진실에 대하여
눈 어둔 말로 묻지마라

길 끝없이 이어져도
그대에게 가지 못하고 쓰러진 날들 많아서
길 가에 꽃 피고
돌무더기 있고
무덤도 있더라

쉼표 마침표 느낌표 어떤 부호로도
그대 가슴에 새겨지지 못한 채
밤새 무사한 목숨 치욕스럽다
끝내 눈 맞춰주지 않고
돌아서서 강 거슬러 오르는 몸짓 부디 아름다워라
은어들이 연어들이
그렇게 강 거슬러 올라 세상이 되느니

길은 흐르지도 않고
길은 머물러있지도 않고
누군가 흘러가거나 누군가 주저앉아 있어서
두고두고 길이다

그대 향하여
나는 다시 길 떠난다
세상에 비온다

출처-시마을